'도로 달리는 항공기' 시대 눈앞에

2008. 10. 1. 22:03일상다반사/내주변의 삽질들


"공항서 이착륙후 바로 목적지로 車처럼 질주"

美업체 항공기 개조한 車내달 시험비행후 내년말 시판

차축거리 넓히고 무게중심 낮춰 돌풍에도 안전하게 설계

이미 40여명 신청…20여시간 훈련 받으면 조종면허 획득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는 오랜 시간 동안 인류가 상상해온 꿈의 자동차다. 지금껏 많은 연구자와 발명가들이 이 만화적 상상을 현실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해왔지만 상용 모델이 출시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내년이면 도로와 하늘을 넘나드는 도로주행 항공기를 거리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미국 테라퓨지아Terrafugia)사가 경량 단발식 프로펠러 항공기를 개조해 만든 2인승 도로주행 항공기 트랜지션(Transition)이 오는 11월 시험비행에 나서 2009년 말이면 공식 시판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비행기? 도로주행 항공기!

출근시간은 빠듯한데 도로에 자동차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서 있을 때면 누구나 한번쯤 내 자동차가 하늘을 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이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이 꿈 같은 상상이 조만간 현실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MIT 출신 연구자들이 설립한 미국 테라퓨지아사가 이와 유사한 개념의 교통수단을 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류는 오랜 기간 동안 이처럼 멋진 교통수단을 현실화하기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왔다. 많은 발명가들이 괴짜라는 비아냥거림을 무릅쓰고 다양한 형태의 자동차 비행기를 설계했다. 또한 축소모형을 만들고 작동 가능한 시제품들을 선보인 경우도 많다.

지금도 동영상 전문 사이트인 유튜브에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flying car)'를 검색하면 세계 각국의 괴짜(?)들이 만든 자동차 비행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테라퓨지아의 트랜지션은 지금껏 만들어진 자동차 비행기들과 기본 콘셉트가 다르다. 기존 발명품들은 자동차에 로터나 날개ㆍ추진장치를 탑재함으로써 비행능력을 확보하는 형태였던 반면 트랜지션은 항공기에 도로주행 능력을 부가하는 방식으로 개발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아닌 비행기를 대체하기 위한 신개념 항공기라는 얘기다.

테라퓨지아가 트랜지션을 하늘을 나는 자동차가 아닌 도로주행이 가능한 항공기로 지칭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속 185㎞로 740㎞ 비행

트랜지션은 경량 단발식 프로펠러 항공기의 동체를 모태로 삼아 4개의 바퀴와 F1 스타일의 서스펜션, 폭 3m의 접이식 날개 등을 부착하고 있다. 외부 동체는 탄소섬유로 만들어졌으며 내부에는 운전자의 안전을 위해 복합소재와 폼코어(foam core)로 제작한 고강도 안전 케이지도 넣었다. 특히 넓은 앞 범퍼는 도로를 주행할 때 차체를 지면에 붙여주는 다운포스를 형성하고 비행 중에는 카나드(canard)의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첨단 항공역학 기술로 설계됐다.

이를 통해 트랜지션은 중량 600㎏의 19만4,000달러짜리 2인승 도로주행 항공기로 거듭났다. 크기는 전장 5.7m, 전폭과 전고가 2.05m로 일반 중형차보다 조금 큰 수준이다. 휘발유를 연료로 사용해 지상에서는 최고 128㎞의 자동차로, 공중에서는 시속 185㎞의 순항속도로 740㎞를 날아갈 수 있는 항공기로 변신한다.

하지만 트랜지션은 자동차가 아닌 항공기를 대체하기 위한 신개념의 개인 교통수단이다. 이 때문에 미 연방항공청(FAA) 규정에 따라 이륙과 착륙시 반드시 공항의 활주로를 이용해야 한다. 당연히 조종사 면허도 필요하다. 공상과학 영화에서처럼 도로를 달리다 길이 막히면 갑자기 날개를 펴고 하늘로 치솟거나 비행 중 아무데나 착륙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급 렉서스 자동차나 세스나 경비행기 한 대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거금을 들여 트랜지션을 구입할 사람들이 있을까. 물론이다. 이미 40여명 이상의 고객들이 프로토타입 모델만 보고 1만 달러의 선금을 내가며 상용 모델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의 부동산개발업자 마이크 맥니콜도 그 중 한 사람. 그는 트랜지션을 타고 주말마다 수백㎞ 떨어진 텍사스와 애리조나의 유명 골프코스를 찾을 꿈에 부풀어 있다. 그는 "트랜지션이 완성되면 공항까지 날아간 후 거기서 몇 ㎞ 떨어진 클럽하우스로 자동차처럼 달려갈 수 있다"며 "비행과 도로주행이 모두 가능해 자동차나 경비행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높은 효용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어떤 기후조건에서도 안전

테라퓨지아 최고경영자(CEO)인 칼 디트리히가 처음 트랜지션의 아이디어를 떠올린 것은 지난 2004년.

당시 MIT 항공학과 학부생이었던 그는 몇 가지 중요한 원칙을 충족시키는 신개념 항공기 개발에 몰두했다. 그 중 핵심 원칙은 크기가 교외주택의 차고에 들어갈 수 있을 만해야 한다는 것, 생산과 수리에 돈이 많이 들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민에 빠져 있던 그에게 FAA가 경량 스포츠 항공기(LSA)를 새로운 항공기 등급기준에 넣기로 했다는 발표는 결정적 영감으로 작용했다. 경량 스포츠 항공기는 악천후시 즉시 착륙해야 한다는 규정을 보고 도로주행 능력을 지닌 항공기의 필요성을 직시한 것. 게다가 경량 스포츠 항공기는 일반 항공기의 절반 수준인 20시간의 훈련만 받으면 손쉽게 조종면허를 획득할 수도 있다.

이에 그는 50여개 이상의 비행기 자동차 설계에 대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거쳐 트랜지션의 기본틀을 확정했다. 문제는 어떠한 기후조건에서도 평범한 자동차처럼 달릴 수 있는 항공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FAA의 경량 스포츠 항공기 기준을 만족시키려면 총중량이 600㎏을 넘으면 안 되는데 이는 웬만한 스마트 카보다 200㎏이나 더 가벼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트랜지션은 기본설계상 차체가 높아 약한 돌풍에서도 전복될 위험성이 엿보였다.

디트리히는 트랜지션의 중심을 낮추고 차축거리를 넓히며 무게중심을 앞쪽에 두는 방식으로 이 난제를 해결했다. 여기에 범퍼 겸용 카나드로 주행 중 다운포스를 생성하는 아이디어도 덧붙였다. 이렇게 탄생한 트랜지션은 항공기로는 FAA청의 기준을, 자동차로는 도로교통안전국(NHTSA)과 환경보호국(EPA)의 규정을 충족시킨다.

물론 디트리히는 트랜지션의 한계도 잘 알고 있다. 그는 "커다란 접이식 주날개와 꼬리날개 탓에 돌풍 등 바람에 민감하다는 점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며 "하지만 미국 내 대부분의 지역에서 트랜지션이 달리지 못할 정도로 날씨가 좋지 않은 날은 1년에 7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11월 처녀비행, 2009년 말 고객 인도

테라퓨지아는 현재 이 트랜지션을 1년에 수백 대 제조해 판매하는 것을 궁극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하지만 완벽한 성능의 상용 모델을 개발했다고 곧바로 시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판매를 위해서는 항공기와 자동차 분야 모두에서 정부 당국의 무수한 규제를 뛰어 넘어야만 한다. 또한 이 새로운 교통수단의 보험 문제를 책임져줄 보험사도 찾아내야 한다.

이를 위해 테라퓨지아는 올해 초 NHTSA 및 EPA 담당자들과 이 부분을 논의했다. 이때 디트리히는 공기역학적으로 좋지 않은 사이드미러를 없애는 대신 비디오카메라와 방풍유리 장착형 스크린을 트랜지션에 채용할 수 있도록 관계자들을 설득했다. 특히 EPA 와는 트랜지션을 자동차보다는 배기가스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항공기로 분류해줄 수 없는지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 아직 명확한 답변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는 관계당국들이 전향적인 결정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테라퓨지아는 일단 이 같은 상용화 작업의 첫 단계로 올해 말까지 3대의 시제품을 추가 제작, 시속 ㎞로 충돌실험을 실시, 트랜지션의 안전성을 입증할 계획이다. 이미 트랜지션과 동일한 소재의 전기자동차를 제작해 실험했지만 테스트 횟수가 충분치 않아 NHTSA의 인증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11월 처녀비행을 할 실증기 제작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디트리히는 첫 비행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경우 관계당국과 논의하고 있는 법적ㆍ제도적 걸림돌도 자연스레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그의 희망대로 모든 것이 잘 마무리되면 테라퓨지아 고객들은 2009년이 가기 전에 꿈에도 그리던 트랜지션을 애마로 가질 수 있게 된다.

서울경제 10월 1일 기사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