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흥사

2008. 9. 25. 23:06일상다반사/삽질하기(출사)

<사진촬영 - 이태훈>



전남 해남군 삼산면 두륜산국립공원에 위치한 대흥사
하계휴가기간 동안 목포를 시작해서 남도일주를 하기로 하고 애마 레조에 몸을 맡긴채 찾아간 대흥사는 사찰규모로는 상당한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특히 대웅전은 별도의 담으로 경계를 갖추고 그 앞은 계곡이 형성되어 대웅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마음을 정화하라는 선조의 가르침이 엿보이는 배치였다.

대흥사 소개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 대흥사(大興寺)는 근대 이전 대둔사와 대흥사로 불리었다가 근대 이후 대흥사로 정착되었다.
해남 두륜산(頭輪山)의 빼어난 절경을 배경으로 자리한 이 곳 대흥사는 한국불교사 전체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도량으로서 특히 임진왜란 이후 서산(西山)대사의 의발(衣鉢)이 전해지면서 조선불교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풍담(風潭) 스님으로부터 초의(草衣)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종사(大宗師)가 배출되었으며, 만화(萬化) 스님으로부터 범해(梵海) 스님에 이르기까지 13 대강사(大講師)가 이 곳에서 배출되었다. 암울했던 조선시대의 불교 상황을 고려한다면, 이들의 존재는 한국불교의 오늘이 있게 한 최대 원동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護國佛敎)의 정신이 살아 숨쉬고 있는 도량이다. 서산대사의 구국 정신은 이미 잘 알려진 내용이지만, 지금 경내에 자리하고 있는 표충사(表忠祀)는 개인의 수행에 앞서 국가의 안위를 보다 우선시했던 한국불교의 전통을 대표하는 전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매년 지역 내의 여러 학생들은 이 곳에 모여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각종 행사에 참여해 오고 있다.

대흥사 경내와 산내 암자에는 중요한 성보문화재가 상당 수 존재한다.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국보 제 308호), 탑산사 동종(보물 제 88호), 북미륵암 삼층석탑(보물 제 301호), 응진전 삼층석탑(보물 제 320호), 서산대사 부도(보물 제 1347호), 서산대사 유물(보물 제 1357호), 천불전(전남유형문화재 제 48호), 천불상(전남유형문화재 제 52호), 용화당(전남유형문화재 제 93호), 대광명전(전남유형문화재 제 94호), 관음보살도(전남유형문화재 제 179호), 표충사(전남기념물 제 19호) 등의 지정문화재와 그 외 성보 문화유산이 대흥사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대변해 주고 있다.
조선중기 이후 수많은 선승(禪僧)과 교학승(敎學僧)을 배출하면서 한국불교의 중심도량으로 성장한 대흥사, 한국불교의 가장 대표적인 호국도량의 위상을 간직하고 있는 이 곳 대흥사는 지금도 성불(成佛)과 중생구제의 서원을 간직한 뭇스님들의 정진이 끊이지 않는 청정수행도량이다


대흥사 연혁
창건 이후 대흥사의 연혁을 전해 주는 자료는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고려시대에는 대흥사가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그시대의 상황을 전해 주는 자료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하지만 『대둔사지』에 의하면 고려 후기의 천태종 소속 고승인 진정국사(眞靜國師) 천책(天?) 스님의 주석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천책 스님이 대흥사 북암(北庵)에 한동안 주석하였으며, 『대둔사지』를 편찬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님이 사용하던 발우가 이 곳에 전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천책 스님이 대흥사 인근의 백련사(白蓮寺, 현 대흥사의 말사)에서 출가하고 그 곳에서 장기간 주석하였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다면, 이 기록은 상당한 타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절 앞마당에 신암(信菴), 사은(思隱), 성유(性柔) 등 세 분 고승의 부도가 세워져 있다는 기록이 실려 있는데, 이들 고승도 역시 고려시대에 활동했던 인물로 보여지긴하나 구체적인 행장은 알 길이 없다. 여하튼 고려시대의 대흥사와 관련한 자료는 매우 부족한 현실이며, 이것은 당시 대흥사가 왕실이나 불교계에서 크게 중시하던 사찰이 아니었다는 측면으로도 설명될 수 있다. 대흥사의 위상이 크게 부각된 시점은 서산대사의 의발(衣鉢)이 이 곳 대흥사에 전해지고 조정과 불교계에서 모두 대흥사를 중시하기 시작했던 조선중기 이후부터이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서산대사의 의발이 전해진 이후 대흥사에서는 13 대종사와 13 대강사가 계속 배출되어 조선불교계를 이끌어왔으며, 조선의 조정에서는 표충사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으므로써 호국정신의 근원지와도 같은 위상을 세우게 되었다. 이러한 대흥사는 일제강점기에 시행된 30본말사법 제도 아래에서 44개의 사암을 관장하는 본사로 지정되었다가 현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22교구 본사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흥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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