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2008. 10. 13. 23:28일상다반사/삽질하기(출사)

청계천을 다녀왔다.
청계천이 복원되고 한참이 지나서 2005년 10월에야 처음 찾아갔다.
처음 청계천을 찾았을때, 그때를 기억한다.
그때가 마지막이었음을 난 미처 알지 못했다...
그때의 기억을 안고 몇 번이고 찾았지만....더 이상 청계천은 그때와 같지 않았다.
물이 바뀌지도 않았고, 시설이 낙후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보고싶은 그것이 없었다...
그곳엔 추억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10월 13일....





청계천이 역사

서울이 조선의 수도로 정해지기 전 청계천은 자연상태의 하천이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서울의 지리적
특성상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도성 한가운데로 물길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조선왕조가 도성 안에 있는 수로를 정비하기 전에 이미 자연스럽게 물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서울의 기후는 계절풍의 영향을 받아 봄·가을에는 건조하고 여름에는 고온다습 하였다. 따라서 청계천은 비가 적은
봄, 가을은 대부분 말라있는 건천 (乾川)이었던 반면,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 우기에는 조금만 비가 와도 물이
넘쳐 홍수가 날 정도로 건기, 우기에 따라 유량의 변화가 심하였다.
더구나 청계천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으며, 주변에는 시전행랑과 민가가 밀집해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비가 많이 와서 물이 넘치면 가옥이 침수되거나 다리가 유실되고 익사자가 발생하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따라서 조선초기 도성건설사업과 함께 배수를 위한 물길을 만드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큰 사업이었다. 개천에 대한
정비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태종 때부터였다. 태종은 즉위 초인 1406년부터 1407년까지 자연상태에 있었던
하천의 바닥을 쳐내서 넓히고, 양안에 둑을 쌓는 등 몇 차례에 걸친 정비로 하천의 모습을 만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은 완전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큰비가 올 때마다 피해는 계속되었다.
마침내 1411년(태종11) 12월 하천을 정비하기 위한 임시기구로 '개천도감(開渠都監)'를 설치하고,
다음 해인 1412년(태종12) 1월 15일부터 2월 15일까지 모두 52,800명의 인부를 투입하여 대대적인 공사를 실시하였다.
주요 하천의 양안을 돌로 쌓고, 광통교, 혜정교 등 다리를 돌다리로 만들었다. '개천(開川)'이라는 말은
'내를 파내다'라는 의미로 자연상태의 하천을 정비하는 토목공사의 이름이었는데,
이 때의 개천 공사를 계기로 지금의 청계천을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태종때 개천공사가 주로 개천 본류에 대한 정비였다면, 세종은 지천(支川)과 작은 세천(細川)의 정비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종로 남북 쪽으로 늘어선 시전행랑(市廛行廊) 뒤편에 도랑을 파서 물길을 하천 하류에 바로
연결시켰다. 이것은 지천의 물이 한꺼번에 개천 상류로 몰려들어 넘쳐나는 것을 방지함으로써 도심의 홍수를 예방할
수 있었다.
1441년(세종 23)에는 마전교(馬前橋) 서쪽 수중(水中)에 표석을 세웠다.
이 표석에 척(尺)·촌(寸)·분(分) 등 눈금을 기둥 위에 새겨, 수위를 측정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수표(水標)이다. 수표는 개천의 수위를 계수화하여 측정함으로써 사전에 홍수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세종때 주목할 만한 사항은 청계천의 성격을 도심의 생활하천으로 규정하였다는 것이다.
서울을 조선의 수도로 정할 때 풍수학상으로 서울 둘러싸고 있는 외수(外水)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흐르는 것에
대응하여 도성 한가운데를 흐르는 내수(內水) 청계천이 한강과는 반대로 서에서 동으로 흐르고 있다는 점이 상당히
고려되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성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었고, 오늘날과 같은 하수도 시설이 없었던
 당시로서 청계천에는 온갖 쓰레기와 오물들이 흘러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청계천의 성격을 두고 풍수학상의 명당수로서 늘 깨끗하게 유지해야한다는 명분론적 주장과 도성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어 더러운 것이 많이 생기므로 이것을 배출할 하천이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 주장이 맞서고 있었다.
이 논쟁에서 세종이 후자의 주장을 받아들임으로써 청계천은 생활하천으로 결정되었다.
이로써 청계천은 조선왕조 500년 동안 도성에서 배출되는 많은 생활쓰레기를 씻어내는 하수도로서 기능을 함으로써
도성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 글  출 처 :  서울시 정보화기획단 정보화기획담당관 =========









그동안 사람들은 추억을 남길 곳이 없었나보다.
마치 추억을 남길 그곳을 찾아 헤메기라도 했듯이...
여기저기서 연인들끼리 가족들끼리 삼삼오오 무리지어 추억을 그리고 있었다.





추억이 머무르는 것이 질투라도 나듯이
청계천은 사람들이 남기고간 추억을 쓸어내기라도 하듯 쉴새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굳이 건널필요가 없는데도 사람들은 징검다리를 건너본다.
그리고는 다시 제자리로 또 건너온다.
또 무엇인가 그들의 발자취를 남기고 싶나보다.



청계천 곳곳에는 사람들의 추억을 상자에 담아주는 박스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어떤이는 통기타를 들고 노래속에 추억을 담아주고,
어떤이는 흰도화지에 추억을 담아주고,
어떤이는 개그를 하며 사람들의 추억을 예쁘게 담아준다...







청계천의 물은 수직으로 수평으로 돌사이로 쉴새없이 흐르고 있다.
사람들이 남기고간 추억을 깨끗이 씻어내기 위해 구석구석 샤워를 한다.
추억이 너무 많이 쌓이면 청계천을 찾는 수많은 사람들이 버려진 추억을 더럽게 느낄까봐
항상 깨끗하게 스스로를 청소한다.
누가 찾아와도 깨끗한 추억을 남길 수 있도록....청계천은 배려한다....







청계천은 표정이 있다.
한가로울때는 잔잔이 흐르기도 하고,
사람들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피부가 거칠하게 바뀌기도 한다.
주말내내 혹사한 청계천에게 마스크팩이라도 해주어야 하나?
하지만, 자연은 내가 인위적으로 해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다.
사람들도 자연의 일부인지라....
시간은 사람을 치료한다.
아픔기억은 스스로 잊어버리는 놀라운 능력을 사람들 모두 가지고 있다.







청계천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광화문 사거리 교보문고에 들러
애써 북돋은 감정을 살릴 수 있게 책 한권을 사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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